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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안양시의회 허원구 의원, “장맛비 속 괴나리봇짐, 그리고 초심으로 돌아가는 마음의 배지”

곽희숙 | 기사입력 2025/05/16 [11:11]

[기고문] 안양시의회 허원구 의원, “장맛비 속 괴나리봇짐, 그리고 초심으로 돌아가는 마음의 배지”

곽희숙 | 입력 : 2025/05/16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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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양시의회 허원구 의원  

 

[경인투데이뉴스] 그해 여름, 덕천마을을 덮친 장맛비는 모든 것을 앗아갈 듯 무섭고 거셌습니다.

철공소에서 일하며 지하 월세방을 전전하던 한 소년,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어린 동생의 손을 꼭 잡고 버티던 그 소년에게

삶은 기댈 곳 하나 없는 막막함 그 자체였습니다.

 

빗물이 방 안까지 차오르던 날,

가진 것이라곤 옷 몇 벌이 든 괴나리봇짐 하나뿐이던 저는

그마저도 대문 밖으로 내던진 채,

세상에 홀로 던져졌습니다.

그때부터였을 겁니다.

울 힘조차 없이 앞만 보며 걷기 시작한 것이.

먹먹한 가슴을 부여잡고, 쓰린 눈을 감은 채 살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흙탕물 같은 세월을 지나

안양이라는 도시의 품 안에서 저는 다시 일어섰습니다.

누군가 건네준 따뜻한 손길, 스승의 한 마디, 친구의 응원…

배우고 또 배우며 삶을 조금씩 다시 채워나갔습니다.

그 길 끝에서, 저는 결국 어른이 되었고,

지금은 시민 여러분의 선택으로 안양시의회에서 일하는 시의원이 되었습니다.

 

당선이 확정되던 날, 저를 오래 지켜봐 주신 한 지인께서

‘그 해 여름 장마’라는 시를 지어 제게 건네주셨습니다.

괴나리봇짐, 빗속의 소년, 그리고 가슴에 달린 배지까지…

제 삶을 한 줄 한 줄 꿰뚫는 그 시는, 지금도 제 마음 가장 깊은 자리에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힘들고 지칠 때마다, 조용히 그 시를 꺼내어 읽습니다.

책상 서랍 속에 곱게 접혀 있는 그 시는

언제나 저를 다시 그 여름의 골목길로 데려다 놓습니다.

흙탕물에 젖은 발을 질질 끌며 걷던,

세상에 홀로 남은 듯했던 그날의 저를 다시 마주하게 합니다.

 

그리고 저는 스스로에게 조용히, 그러나 깊고 간절하게 다짐합니다.

“초심으로 돌아가자. 성실된 마음으로 의정생활에 임하자. 맑고 깨끗한 정신의 안양시민과 끝까지 소통하자.”

 

이 다짐은 단순한 결심이 아닙니다.

무너지고 싶을 때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저를 붙들어 세우는 마음의 뿌리입니다.

흔들리는 현실 속에서도 제가 시민을 향해 정직하게 설 수 있도록,

다시 중심을 잡아주는 생의 나침반입니다.

제게 주어진 이 배지는 단순한 직책이 아닙니다.

그 시절의 저와 지금의 시민, 그리고 아직 말하지 못한 이웃들을 향한

약속이며 책임이자, 다짐입니다.

 

지금도 안양 어딘가에는,

또 다른 괴나리봇짐 하나가 대문 밖으로 내던져졌을지도 모릅니다.

삶의 무게에 주저앉을 듯한 누군가가,

절박하게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 저는 그 곁으로 가장 먼저 다가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때의 제가 그렇게 품을 받았듯,

이제는 제가 품어야 할 차례이기 때문입니다.

 

시의원의 자리는 특권이 아니라 책임입니다.

누구보다도 낮은 곳에서, 누구보다도 오래 귀 기울이며,

시민 한 분 한 분의 목소리에 진심으로 답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행사의 단상보다 복지관의 벽난로 앞에서,

도시계획보다 삶의 온도 앞에서 더 오래 머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장맛비가 조용히 내립니다.

숨죽인 창가를 두드리는 그 빗방울은 제게 말합니다.

“그날의 너를 잊지 마라. 그 길을 왜 걸었는지 기억하라.”

 

그래서 오늘 아침, 비 내리는 안양시 의회 306호 사무실 창가에 앉아

조용히 그 시를 펼쳐 봅니다.

“초심은 젖지 않는다. 품어준 안양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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