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조현정, 언어가 바뀌지 않으면, 행정 서류와 기계(키오스크)는 편의가 아니라 또 하나의 장벽이 됩니다
[경인투데이뉴스=김종석 기자] 행정복지센터를 찾거나 행정 서류를 받아들었을 때, 글자는 모두 읽었지만 정작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선뜻 이해되지 않았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낯설음은 행정을 자주 접하지 않는 분들일수록 더 크게 느껴지며, 특히 어르신들께는 행정 전반을 어렵게 만드는 첫 관문이 되곤 합니다.
행정 서류에는 법적 정확성을 이유로 일상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 표현들이 반복됩니다. 예를 들어 복지 관련 안내문에는 “본 급여는 소득인정액이 선정기준액 이하인 자에 한하여 지급됩니다”라는 문장이 등장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소득인정액’이 무엇인지, ‘선정기준액’이 얼마인지, 결국 내가 해당되는지 아닌지를 이 문장만으로 판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특히 어르신들께는 서류를 몇 번이고 다시 읽어도 의미가 분명하지 않아, 결국 직원에게 설명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무인민원발급기와 같은 민원처리 기계 역시 비슷한 어려움을 안고 있습니다. 화면에는 ‘제증명 발급’, ‘대상자 여부 확인’, ‘요건 미충족’, ‘본인 확인을 진행해 주시기 바랍니다’와 같은 문구들이 이어집니다. 공손한 표현이지만, 무엇을 눌러야 하는지, 왜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는지에 대한 설명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기계 앞에서 여러 번 멈추게 되고, 결국 도움을 요청하게 됩니다.
특히 어르신들의 경우, 이 ‘도움을 요청하는 순간’이 또 다른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서류가 어렵고 기계가 낯선 상황에서 몇 번을 시도한 뒤에야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지만, 바쁜 민원 현장 속에서 돌아오는 짧은 설명에 오히려 위축감을 느끼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질문을 한 사람이 괜히 미안해지고, ‘내가 이런 것도 혼자 못 하나’라는 마음이 남는 순간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러한 불편함은 공무원 개인의 태도 문제라기보다, 행정 서류와 민원처리 기계가 처음부터 혼자서는 이해하기 어렵게 설계된 언어와 구조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언어는 설명을 요구하게 만들고, 설명이 반복될수록 현장의 부담은 커집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크게 어려움을 느끼는 이들이 바로 어르신들입니다.
그래서 문제의 출발점은 사람보다 언어와 설계에 있습니다. 행정 서류와 민원처리 기계는 행정을 정리하고 자동화하기 위한 수단이기 전에, 누구나 특히 어르신들께서도 혼자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안내자여야 합니다. 언어가 바뀌지 않으면, 서류와 기계는 편의가 아니라 또 하나의 장벽이 됩니다.
조금만 관점을 바꾸면 개선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소득인정액이 선정기준액 이하인 자”라는 표현을 “소득과 재산이 일정 기준보다 적은 분께 드리는 지원금입니다”라고 풀어 쓰는 것만으로도 이해도는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제증명 발급’ 대신 ‘서류 뽑기’, ‘대상자 여부 확인’ 대신 ‘신청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라고 안내하는 작은 변화가, 어르신들의 부담을 크게 덜어줄 수 있습니다.
행정의 정확성과 이해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닙니다. 특히 어르신들께서도 스스로 읽고 판단할 수 있는 언어로 안내할 때, 행정은 더 정확하게 전달되고 민원은 줄어들며 현장의 부담도 함께 낮아집니다. 이는 친절의 문제가 아니라 행정의 품질과 효율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행정복지센터는 어르신들이 행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는 공간입니다. 그곳에서 사용하는 서류의 말과 기계의 안내가 조금 더 일상에 가까워질 때, 어르신들께서도 더 이상 고개를 숙이지 않고 행정을 이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술을 바꾸기 전에, 그 기술과 서류가 사용하는 언어부터 다시 살펴보는 논의가 이어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김종석(saakk64012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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