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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 예비전력” 전역 후 찾은 나의 자리

곽희숙 | 기사입력 2026/05/07 [09:45]

[기고문] “ 예비전력” 전역 후 찾은 나의 자리

곽희숙 | 입력 : 2026/05/07 [09:45]

▲ 육군 예비역 대위 김학성 제51사단(상록예비군 훈련대)

[경인투데이뉴스=곽희숙 기자] 군생활은 나에게 너무 벅차고 힘든 일상이었다. 하루하루를 살아낸다기보다, 그저 꾸역꾸역 버텨내는 시간에 가까웠다. 퇴근 후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숨을 돌리는 여가 시간이 그나마 유일한 낙이었다. 그만큼 몸과 마음은 늘 지쳐 있었고, 미래에 대한 확신도 쉽게 생기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업무적으로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혀 결국 버티지 못하고 전역 지원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전역 후 몇 달간은 방향을 잃은 채 방황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경기남부 제대군인지원센터의 상담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방황만 하던 나에게 들여온 그 친절한 목소리는 메마른 마음에 스며드는 샘물처럼 느껴졌다. 차분한 상담 끝에 ‘예비전력업무담당자’라는 새로운 길을 알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군생활 중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동원훈련과 예비군훈련 현장이었다. 그래서 이 일이야말로 나의 적성과 잘 맞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고, 지원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담당 상담사는 마치 자신의 일처럼 진심으로 걱정해 주었다. 그 덕분에 흐릿했던 삶에 분명한 목표가 생겼다. 나는 도서관을 다니기 시작했고, 하루하루 다시 공부에 몰두했다. 물론 휴직 기간 재정적 부담과 가정사가 겹쳐 쉽지 않은 시간도 있었다. 집중이 흐트러질 때도 많았지만 경기남부제대군인지원센터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학원 지원비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었고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이 시기 나는 지쳐 있던 몸과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나만의 생활 루틴을 만들었다.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러닝을 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마음으로 108배를 올렸다. 흔들리던 마음을 붙잡아 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이 작은 습관들은 공부를 이어갈 수 있는 체력과 집중력을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예비전력업무담당자를 목표로 공부할 끝에 원하던 지역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임용 소식을 들었을 때의 감정은 마치 꿈꾸는 것처럼 믿기지 않았다.

 

임용된 지 어느덧 2년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이 생활에 매우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다. 단순한 만족을 넘어, 잃어버렸던 자신감과 자존감을 되찾았다. 현역 시절에는 늘 위축되고 불안이 쌓여 있었다면, 지금은 당당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삶의 균형이 달라졌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눈에 띄게 늘어났고, 그 자체로 큰 행복을 느낀다. 나만의 시간, 자기계발을 위한 시간이 확보되면서 스스로 성장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만족감을 얻고 있다.

 

이러한 변화된 삶의 태도와 마음가짐이 2025년 육본 최우수 예비군 교관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믿는다.

 

지금도 경기남부제대군인지원센터에서는 문자로 각종 프로그램과 교육과정에 대한 안내를 보내준다. 나는 그 문자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유심히 살펴본다. 언제, 어떤 정보가 또 다른 인생의 전환점이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제대군인지원센터는 과거의 도움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나의 가능성을 넓혀주는 연결 창구로 남아 있다.

 

지금 돌아보면, 전역이라는 선택은 내 인생에서 가장 용기 있고 후회 없는 결정이었다. 비록 수입은 현역 시절보다 감소했으나 삶의 만족도와 비교한다면 그 수입의 차이는 전혀 아깝지 않다. 제대군인지원센터는 전역 이후 지금의 나에 이르기까지 항상 곁에서 버팀목이 되어 준 든든한 존재였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전직이나 취업 준비 중 인분들이 있다면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지금의 고민과 불안은 결코 약함의 증거가 아니다. 그것은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는 분명한 신호다. 긍정의 마음으로, 자신을 믿는 용기로 도전해 보시길 바란다.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 제대군인지원센터와 같은 든든한 조력자는 분명 존재한다.

 

나 역시 그 도움을 통해 다시 일어설 수 있었고, 지금은 예비군 교관으로서 인생에서 가장 단단한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그때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지금의 내가 조금씩 증명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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